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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법성포 굴비가 유명한 이유. 굴비 이름을 만든 이자겸 때문. 굴비 유래

by 관심남 2023. 10. 17.

 

고소하고 비린내가 적은 맛있는 생선 조기. 조기로 만드는 굴비는 우리나라에서 몇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독한 구두쇠가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한번 먹고 한번 쳐다봤다는 자린고비 이야기.

굴비 두번 보면 짜다고 못보게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유명하고

 

굴비 이름을 지어준 이자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이자겸의 난

 

이자겸을 아시나요? 이자겸 이름만 들으면 몰라도

이자겸의 난이란 단어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굴비의 유래를 알려면 이자겸이란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1) 이자겸의 시대

 

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사회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호족세력은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호족세력은 왕권을 위협할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가졌었고, 고려시대 정치 경제를 오랫동안 독점하게 되는데

 

이들이 꾸준히 권력을 유지하는 비법은 바로 왕실과 혼인을 하는 것

 

고려시대 이자겸이란 인물은 자신의 딸을 예종에게 시집을 보내 왕의 장인이 되어서 권력을 키웠고

 

예종과 황후가 낳은 인종에게도 자신의 딸 둘을 혼인시켜서 권력을 더 굳건히하고 이어가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인종은 열네살의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이자겸이란 사람은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어른이 된 기이한 상황이었죠

 

 

 

2) 사위 인종의 공격과 실패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이자겸이 휘두르는 가운데

이자겸이 자신을 쳐내고 왕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오던 인종.. 

 

인종이 18살이 되던때 이자겸의 오른팔 고려시대 최고의 무장 척준경의 동생과 아들을 제거하면서 이자겸의 난이 시작됩니다.

 

동생과 아들을 잃은 척준경이 이성을 잃고 궁에 불을 지르면서 궁에서 나오는 사람을 베어버리는 잔혹감을 보여주는데,

인종은 결국 척준경에게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3) 감금된 인종. 반격에 성공하다

 

이후, 인종은 이자겸의 집에 감금되고 나라 국정을 자신의 마음대로 운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금된 인종에게 생명 위협을 계속 가하는등 경계를 잊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척준경과 이자겸 사이가 안좋아진 틈을 타 인종은 척준경에게 신의 한수를 던집니다.

 

이자겸이 오늘밤 인종 자신을 해칠음모가 있고, 자신이 살해된다면 나라가 무너진 책임이 척준경에게도 있어서 역사에 남을것이라는 것.

 

척준경은 이자겸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때에 이말을 듣고 마음이 동요하여 인종편에 서게됩니다.

군권을 쥐고 있던 척준경은 이자겸과 그의 세력을 손쉽게 체포하게 되는데,,,

 

이후 인종은 차마 이자겸을 죽이지는 못하고 전라남도 영광으로유배를 보내게 됩니다.

이자겸, 그리고 아내, 아들들까지 유배형을 내립니다. 자신과 결혼한 왕비도 궁에서 내쳐서 폐비로 만듭니다.

 

 

 

 

영광 법성포에서 유배생활을 한 이자겸

 

이자겸은 영광 법성포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데, 

유배중에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 맛을 보고 그맛에 반해버립니다.

 

인종이 조기를 좋아할것으로 생각하여 왕에게 진상을 하게되는데,

 

한때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이자겸은 왕에게 진상하는 선물이 아부로 보이는 것이 싫었습니다.

 

난을 잃으킨 자신의 죄를 봐달라고 비굴하게 진상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기에 왕에게 진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닐 비, 굽히다 굴. 비굴하지 않다란 글자를 거꾸로 하여

 

굴비라는 이름을 말린 조기에 지어 선물을 보냈것이 유래하여 굴비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후, 굴비는 왕에게 진상했던 것처럼 명절선물이나 귀한사람에게 선물하는 생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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